-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의료사고 토론회서 밝혀
- 울분, 단순한 분노 아닌 사회적 배신과 부당함의 감정
-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 사건 피해자서 심하게 나타나”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의료사고를 겪은 유가족들은 극심한 외상적 스트레스인 외상후울분장애(PTED)를 경험할 수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울분은 단순히 화가 나거나 속상한 감정이 아니라, ‘분하고 답답하며 괴로운 마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상태’를 포함하는 복합적인 정서다. 사전이나 문학 작품에서는 울분을 △뼈에 새겨진 듯한 절통함 △마음속에서 날뛰는 괴로운 상태 △억울함과 분노가 함께하는 서럽고 답답한 마음으로 표현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는 12일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주관으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의료사고 피해자 울분 해소와 형사고소 최소화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에서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의 상실의 고통과 울분: 우리에게는 어떤 준비와 변화가 필요한가’를 주제로 발표하며 “울분은 특정 개인의 모욕만으로 발생하지 않고, 사회가 만든 법, 제도, 전문 시스템 등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거나 배반할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이라고 설명했다.
울분은 우울과 명확히 구분된다. 우울은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고 내면에 침잠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울분은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고, 세상이 공정하게 바뀔 수 있을지에 대해 비관적 전망을 갖는다.
또한 초기에는 좌절감, 당혹감, 자기책망 등으로 시작하지만, 심화될 경우 △절망 △사회적 배신감 △깊은 분노와 상실감으로 발전한다. 유 교수는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 사건 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서 특히 심하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발표에서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극심한 외상적 스트레스, 즉 외상후울분장애를 경험할 수 있다”며, 울분이 사고 자체의 충격뿐만 아니라 사고 이후 제도적 대응, 소송 과정, 사회적 지지 부족 등으로 더욱 심화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따르면 의료사고 유가족들은 사고 발생 초기 믿고 의지했던 의료기관과 전문가에 대한 배신감과 분노, 심한 우울과 절망감을 경험하며, 소송 과정에서 제도적 정보와 지원의 격차로 울분이 더욱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유 교수는 “이 과정에서 느끼는 사회적 부당함과 불공정은 개인의 정신 건강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 수준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2018년부터 국내 일반인과 사건·사고 피해자를 대상으로 울분 측정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에서는 전체 인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사람이 울분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며, 특히 의료사고 유가족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은 울분 수준이 매우 높았다. 울분이 높을수록 삶의 질과 만족도, 사회적 공감 능력은 낮아지고, 우울감과 자살 생각과의 상관관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조사 결과, 의료사고 유가족들이 겪는 감정이 △의료소송을 겪으며 의사, 변호사, 경찰, 공무원, 법원 어디에도 믿을 사람이 없다 △의료사고가 명백해도 연줄이 없으면 승수할 수 없다는 등의 우리 사회의 신뢰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울분이었다고 분석했다.
끝으로 유 교수는 “유가족이 상실의 고통 속에서 경험하는 울분은 소송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감정”이라며 “이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 충분한 정보 제공, 의료기관과의 소통 등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유 교수의 이날 발표는 지난 2020년 발표한 ‘의료사고 피해 유가족의 울분과 사회적 고통 : 사회적 불공정은 어떻게 상실의 고통을 심화시키는가’라는 제목의 논문에 기초했다. 논문에는 7명의 의료사고 유가족들이 인터뷰를 분석한 내용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