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자보건법 개정안, 약물중지·건강보험 포함… 임신중지 합법 기반 마련
- 형법 개정·노동권 보완은 과제… 시민사회 “후속 입법 시급”
[현대건강신문=여혜숙 기자] 지난 11일 제22대 국회에서 ‘낙태죄 대체법안’으로 불리는 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처음으로 발의됐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지 6년 만에 처음 국회 문턱을 넘은 것으로, 사실상 임신 중지를 제도화하는 첫 입법 시도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국회의원 11명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낙태죄가 비범죄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성들은 불안과 혼란 속에서 임신중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며 입법 배경을 밝혔다. 현행 법체계가 임신중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공적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개정안은 △약물(유산유도제)을 통한 임신중지를 허용하고 △임신중지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이 가능하도록 했으며 △임신중지 허용 사유를 규정하던 제14조를 전면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뒷받침할 구체적 조치로 평가받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한 부분도 있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에 대한 삭제나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인공임신중지를 한 여성에게 유산·사산과 같은 수준의 휴가를 부여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이번 발의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민사회는 이번 발의를 환영하면서도, 후속 입법의 신속한 추진을 촉구하고 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국회의 ‘입법 공백’이 6년간 이어지는 동안, 많은 여성들이 정보 부족, 음성적인 약물 접근, 의료기관 내 의사의 거부 등 현실적 문제에 직면해 왔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에 대한 요구도 거세다. 특히 유산유도제(미프진)의 도입과 임신중지 시술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등은 입법과 별개로 행정부 차원의 적극적 조치가 가능한 부분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지난해 9월 이러한 내용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식약처와 복지부는 법 개정 미비를 이유로 책임을 미뤄왔다.
민주노동당은 16일 성명을 통해 “이번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환영할 만한 진전이지만, 형법 개정과 노동권 보장까지 포함된 실질적 보완입법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사회적 합의를 핑계로 여성의 권리를 유예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법적·제도적 공백을 메우기 위한 22대 국회의 첫 걸음. 그 뒤를 이을 입법과 정부의 실행이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