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6-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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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산재사망 1위 국가, 매년 1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산업재해를 입고 2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국가, 한국입니다.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현대건강신문] 사람의 죽음의 원인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리고 그 셀 수 없을 만큼의 원인으로 인해 대한민국에는 한해 30만명 정도, 하루 평균 800명 이상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그 800명 이상의 죽음의 원인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그 죽음은 두 가지로 나뉜다. 

받아드리는 죽음인가, 인정하지 못하는 죽음인가.

인류가 유일하게 돌이키지 못하는 것은 시간과 죽음뿐인가 싶다. 

그러하기에 사람은 죽음 앞에 공포와 오열, 슬픔의 감정을 드러내 보인다.


받아드리는 죽음에도 돌이킬 수 없기에 슬픔과 오열을 쏟아낸다. 하물며 인정하지 못하는 죽음, 억울한 죽음,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에는 슬픔과 오열을 넘어 분노와 원한이 생성된다. 

인정치 못하는 죽음, 납득하기 어려운 죽음, 억울한 죽음 속에 과로사가 존재한다. 


과로사, 영어로는 death from overwork.


overwork는 over + work, 일이 넘친다는 의미이다. 

넘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생존의 한계치이다. 

생존의 한계치를 넘어서 일을 하면 죽는다. 그것이 과로사인 것이다. 

과로사는 천천히 죽음으로 가는 병이 아닌 살인 이다. 과도한 노동이 축적되어 생존의 한계치에 다다르면 죽는 것이 과로사인 것이다. 


문제는 그 생존의 한계치가 개개인마다 다르게 설정된다. 하기에 생존의 한계치를 누구나 넘지 않는 노동을 하기 위해 법으로 정해놓은 기준이 있다. 

바로, 하루 8시간 노동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 다음 해에도 일 할 수 있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시간인 것이다. 

사람은 하루 12시간의 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루 12시간의 노동을 하는 사람에게 내일의 노동, 모레의 노동, 다음 해의 노동을 보장할 수 없다. 


자신이 선택해서 과한 일을 하다가 과로사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억울한 죽음이라기보다 안타까운 죽음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는 자영업자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들의 죽음도 과로사이며 자식의 위해 개인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일하다 죽음을 맞이했기에 과로사이며 안타까운 죽음이다. 

허나 그 죽음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면 '안타까운'이라는 표현이 인색함을 알 수 있다. 


우리가 가끔씩 하는 이야기가 있다. 


죽을 만큼 일해도

죽도록 일해도

죽어라 일해도


농담 반 진담 반인 이 이야기들의 끝은 죽음이다. 


죽어라 일하고 죽지 않기 위해 병원을 가는 이런 모순적이 삶이 대다수의 삶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도 죽도록 일해야 하는가.

죽도록 일하지 않아도, 죽을 만큼 일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올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사회에는 분명 노동법이 존재하는 법치국가이다. 

2021년, 법은 올해도 바뀌었다. 

최저시급은 시간당 8,720원으로 1.5% 상승하였고,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되었다. 

육아휴직 기간 분할도 1번에서 3번으로 바뀌었다. 

뿐만아니라 30인이상의 사업장에서도 휴일근로수당이 지급이 된다. 

그 외에도 다수 개정된 항목이 있다. 


그럼, 올해에는 과로사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없어질까?

과로사가 주된 이슈가 되는 뉴스가 없었으면 하는 것이 절박한 소망이다. 

허나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은 왜 과로사로 이어지는가 이다.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일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 가 없다. 또한 기업은 지속적이고 능률적인 운영으로 자본을 끊임없이 확대해야하는 필연적 욕구가 있다. 

이 구조 속에 노동자가 살고 있다. 


기업은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뽑아낼 것인가를 끊이 없이 기획하고 현장에 도입을 한다. 

노동자는 기업에서 제시하는 생존의 한계치를 몸으로 견디어내며 실험의 대상으로 일을 한다. 어느 한 노동자가 견디지 못해 퇴사를 하면 사람을 뽑고, 어는 한 노동자가 과로사로 죽어서 뉴스에 나오면 기획안을 다시금 점검하는 정도로 기업은 대하고 있다. 


사실, 개정되기 전 노동법이라도 기업이 제대로 준수한다면 과로사가 있겠는가. 

과로사는 사회 구조적 살육이라고 볼 수 있다. 


과로사를 끝내는 방도는 사회 구조적으로 안정적 고용을 보장하면 해결 될 일이다. 

모두가 알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이 사회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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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H칼럼] 과로사, 멈출 수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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