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장래 전문의 밝혀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단주 모임에 참석한 사람이 ‘15년 동안 술을 먹지 않았지만 나는 알코올 중독자’라고 밝히는 것을 보며 중독은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이란 생각이 들었다”
버닝썬 사건으로 마약 중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총회위원회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지정한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렇듯 우리 생활에 다양한 ‘중독’ 문제가 밀접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장래 전문의를 만나 중독의 정의와 위험성, 치료법에 대해 들어봤다.
국립정신건강센터에서 중독 관련 치료를 계속해 온 김장래 전문의는 최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자리를 옮겨 병원 내원 환자의 중독 치료를 위한 진료를 시작했다.
김 전문의는 “최근 몇몇 사건이 사회적 관심을 끌면서 중독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지만 사실 중독 문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양한 계층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최근에는 SNS 등을 통해 마약 구입이 쉬워지면서 마약 청정국 지위까지 위협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장래 전문의를 통해 들어본 중독에 대한 원인과 치료법을 질의 응답식으로 정리해봤다.
Q. 중독의 정의는
A. 유엔(UN)에서는 의존성이 있고 멈추면 금단 현상이 오고 불편하면 반드시 찾게 되는 물질을 마약으로 규정했다.
단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사는 남성 ‘알코올 중독 환자’는 집에서 술을 살 수 없게 돈을 주지 않자 초등학생의 돈을 뺏어 술을 사 먹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지만 환자를 상담해보니 ‘금단 증상이 너무 두렵고, 죽을 것 같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또 다른 중독 환자는 만 4일, 96시간 동안 컵라면 3개만 먹고 계속 게임만 했다. 결국 피씨(PC)방 주인의 신고로 경찰에게 인계되고 부모가 이 환자를 만나 집으로 데리고 갔다.
또 다른 20대 남성은 3박5일로 마카오로 놀러가 도박장에서 2억을 딴 뒤, 직장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직 마카오에 가는 것만 생각했고 결국 도박 중독에 빠졌다. 중독 환자를 진료하면서 비슷한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Q. 중독의 원인과 치료는
A. 전 세계 중독 연구를 보면 유전적 원인이 60% 이상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명이 똑같은 경험을 하는데 이 중 유전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중독에 잘 걸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혈압을 진단 받았다고 주위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거나 책임을 탓하지 않는다. 일찍 잘 발견했으니 다행이라 여기고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혈압약도 복용하며 관리를 시작한다.
중독도 이와 비슷한 1차 질환이다. 일상생활이 지장이 클 정도로 약물에 의존적이고 금단 증상이 심하면 병의원을 찾아 치료를 하면 된다.
그리고 평생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 수십년 동안 술을 끊은 알코올중독자가 어떤 기회로 술을 먹기 시작하면 또 다시 알코올중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중독도 비슷하다.
특히 마약은 한 번만 하면 심각한 중독에 빠질 수 있어, 첫 경험부터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여성이나 학생들이 다이어트 약을 지어달라고 동네의원을 찾는데 다이어트 약에는 약한 성분의 각성제가 들었다. 이게 나중에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트럭기사들이 졸음운전을 이기기 위해 필로폰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로 인해 중독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중독은 치료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치료하고 관리하면 회복될 수 있다.
한 단주모임 참석자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알코올중독자였지만 15년간 술을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앞에 나가 ‘지난 15년간 한 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나는 중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 잔을 마시면 어떻게 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
Q. 어느 정도 증세를 보여야 치료가 필요한 중독인가
A. 중독은 단일 요인으로 선을 그을 수 없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한 사람의 중독 증세가 일상 생활을 얼마나 방해하는지, 종합적으로 분석해 중독 상황을 판단하라고 한다.
쉽게 말해, 일상생활이 중독행위로 잠식돼 사회적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할 때 치료가 필요하다.
알코올, 도박, 마약, 게임 중독자들은 공통적으로 중독 물질을 접할 때 오는 ‘만족감, 편안함, 성취감’ 등을 현실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중독 행위에 관련되는 것은 개인 요인들이 있다. 퇴근 길에 술을 마시거나 기분이 상하면 술을 마신다. 첫 만남이 불편해서 술을 마신다. 이런 경우 알코올중독을 의심해봐야 한다.
음주로 인해 본인이 불편한 것이 하나라도 있으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여러 요인으로 술을 마시는데 술을 안 마시고 뭘 할지 찾는 것이 치료이다.
다이어트약을 안 먹으면 살이 찌는 경우가 있는데 일부 여성들은 이것을 못 견디고 다시 약을 찾는다. 여기에 개입해 이 정도면 주변에서 살 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야 한다.
김장래 전문의는 △ 음주 후 귀가 할 때 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일이 반복 △술을 마시고 난 뒤 가족들과 싸우게 된다 △술을 마시고 인간관계가 안 좋아지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Q. 중독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나
A. 중독 치료는 ‘12단계 촉진치료’를 많이 사용하는데 1단계가 중독자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보통 도박·술·마약 중독자들은 이게 안 된다. 인정하는 단계는 어느 정도 신체적·경제적 손해를 봐야 가능하다.
술을 마시고 사고가 발생했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또 다른 사람은 한 번의 실수로 치부하고 지나친다. 실수로 생각하는 사람은 중독 위험이 그만큼 높아지는 것이다.
중독 행동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닥칠 위험을 예측해야 한다. 중독 증상이 계속되면 더 많은 것을 잃고 회복하기 힘들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중독은 낫지 않는 병이고 어차피 다시 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데 앞서 말했듯이 중독도 만성질환으로 생각해야 한다.
폐렴에 걸리면 항생제 쓰고 입원했다 치료받고 퇴원한다. 중독은 이것과 조금 다르다. 술을 매일 먹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술을 안마셨지만 다시 한 잔을 들면 또 다시 시작되는 만성질환과 비슷한 점이 있다.
보통 중독 치료를 마치면 ‘회복자’라고 말하는데 10년간 술을 끊었던 환자가 다시 중독이 되기도 한다. 반면 잘 관리해서 중독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중독질환은 유전과 영향이 많은데 여기에 취약성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를 잘 관리한다고 생각하며 치료받는 것이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