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9(금)
 
헤드라인 copy.jpg▲ 길병원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는 “현재 산재보험이 부실해, 산재 환자들 중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 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면 건강보험 누수도 그만큼 줄어들고 이를 상병수당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양승조 위원장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상병수당 없는 나라”

임준 교수 “재원, 우리 사회 감당하지 못할 정도 아니다”

[현대건강신문=박현진 기자] 암 등 중증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일까.

재난적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것도 무섭지만 취약계층 등 서민의 경우 수입이 없어져, 가계가 ‘파산’ 상태에 빠지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공포스런’ 일이다

백혈병을 치료하고 정상 생활에 복귀한 김운전씨(가명)는  24일 서울 신촌 현대벤처빌에서 ‘건강보험, 아프니까 상병수당’을 주제로 열린 환자포럼에서 치료 이후의 생활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대기업 부장으로 일하던 중 백혈병이 발생해 병원에 입원한 김 씨는 치료가 시작된지 6개월 만에 회사 인사담당으로부터 ‘우리 내규에 언제까지 임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조항이 있느냐’는 문자를 받았다.

퇴직하라는 간접적인 압박이다. 김씨는 “문자를 받고 그만뒀지만 다행히 아내가 가게를 하고 있어 그 소득으로 가족들이 생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혈병을 치료한 뒤 건강을 찾은 김 씨는 이후 백혈병환우회에서 운영하는 무균차량 봉사를 하고 있다.

무균차량 봉사는 백혈병 환자들이 치료 이후 집으로 갈 때 감염 위험이 높기 때문에 무료로 집까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김 씨는 “차에 탄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은 내 치료 경험을 말하면 건강을 회복했다는 것에 놀라고 소득이 없는데 어떻게 (살림을 꾸려서) 살고 있는지도 궁금해 했다”며 “이제야 상병수당에 대한 논의를 하는지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2000년 국민들의 치료부터 건강한 삶까지 책임지겠다는 목표로 ‘의료보험’의 이름을 ‘건강보험’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국민들의 ‘건강생활’을 위한 대책은 먼나라 이야기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도 “제가 중병에 걸려 몇 년씩 치료를 받으면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학원비도 감당하기 어려워진다”며 “의료비로 인해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줄 가능성이 높아진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가정의 가장이 중병에 걸려 장기간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일을 하지 못하면 가정까지 몰락하는 현실을 개선하자는 목소리는 어디서도 듣기 힘들었다.

국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상병수당제 도입’의 필요성 역설하고 있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양승조 위원장은 “직장에 다니지 못해 소득이 끊기고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웃들이 즐비하지만 건강보험으로 전환되면서도 상병수당제를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OECD 국가 중 상병수당제가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해 최소의 인간적인 생활을 위해서라도 이 제도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세로_사진.gif▲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오건호 공동운영위원장은 민간보험에 들어가는 돈을 건강보험을 돌리면 상병수당제는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도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상병수당을 건강보험에서 감당할 경우 보험료 상승과 보험 재정이 고갈될 것이란 주장에 대해 길병원 예방의학과 임준 교수는 “현재 산재보험이 부실해, 산재 환자들 중 건강보험으로 치료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산재 보장이 실질적으로 이뤄지면 건강보험 누수도 그만큼 줄어들고 이를 상병수당 재원으로 돌릴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상병수당제를 운영할 경우 매년 2조8천억원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재활의학과 의사인 참여연대 정형준 실행위원은 “매년 수입과 지출이 같아야하는 건강보험 누적 재정이 20조에 달했는데 지금이 상병수당제를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중복지 모델로 가기 위해서는 20조원을 빨리 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병수당이 ‘적정진료’를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힌 정 위원은 “상병수당이 없다보니 빨리빨리 치료하며 주사제 남용을 하고 있고 재활은 꿈도 못 꿀 상황”이라며 지적했다.

정 위원은 “상병수당이 마련되면 적정진료가 가능해지고 재활치료가 더 쉬워지고 로봇시술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대학병원에서 로봇수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이유 중 하나는 수술시 절제 부위가 적어 입원 기간이 짧은 반면 수익이 높기 때문이다.

간사랑동우회 윤구현 회장은 “국립암센터의 조사 결과 환자들이 암에 걸리면 아픈 것보다 돈 걱정을 더 많이 한다”며 “2009년 자료를 보면 암 환자의 본인 부담은 177만원이지만 일을 하지 못해 줄어드는 소득이 678만원에 달했다”며 구체적 수치를 제시하며 상병수당제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양승조 위원장실 홍춘택 보좌관은 “상병수당제 도입을 위해 정비해야 할 산재보험, 건강보험 등이 국회 내 다른 상임위의 영역이어서 논의가 안 되고 있다”며 “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자영업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게 이들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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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상병수당...암 걸리면 아픈 것보다 돈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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